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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을 넘어 의심에서 지지로_ 김해정(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
  • 등록일 :2024-10-30
  • 작성자 :성미화
  • 조회수 :8

성폭력상담소에서 피해자를 일상적으로 만나는 일을 하다 보니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과거에는 “그런 일이 실제로 있어요?”라는 질문을 들었다면,
지금은 “내 주변엔 없는 일이지만” “나는 경험해본 적이 없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성폭력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변화됐다.

성폭력은 나와 직접 관계없는 일로 여기고 싶은 불편한 주제이고 드러내기 어려운 문제다.
성폭력의 일상성을 대중에게 알린 ‘#미투 운동’은 어느 사회에나 성폭력이 발생하고 있음에
대한 고발이자 불편함을 이유로 외면하지 말아 달라는 외침, 이 사회를 함께 변화시켜 나가겠다는
약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투 운동’의 흐름 안에서 국방부는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경험을
드러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특별대책 TF팀을 운영하면서,

TF 운영 기간 중 발생한 사건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군부대 남녀 간부 대상 간담회를 진행했으며,
군사법정에서 진행되는 재판을 방청하기도 했다.성폭력의 심각성이 알려질 때마다 사회의 해결방안은
가해자 처벌에 집중돼 왔다. 한국의 성범죄 처벌 제도는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비난 분위기와 함께 신상정보 공개,
전자발찌 부착 등 보안처분 마련과 양형(量刑) 강화로 이어졌다.

특히 군형법을 적용하는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의 경우 형법과 달리 강제추행도 벌금형 없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는 등 더욱 엄하게 처벌된다. 다른 범죄에 비해 양형이 높은 데다 ‘성범죄로 신고당하면 피해자 말만 믿어준다더라,
애매하면 기소한다던데’로 통하는 인식 탓에 사회 통념의 홍수 속에서 가해자는 피해자를 몰아붙이는 방식으로
혐의를 벗어나려고 한다.그러나 법원의 형량이 가해자에게 온정적이라는 비판은 여전하다.

가해자에게 강력한 처분을 내릴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는 현실에서 중한 처벌을 받는 자와 온정의 혜택을
받는 자는 어떻게 구분될까? 아동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에게 징역 10년이 선고됐다는 기사에는
“고작 10년이라니, 판사님 미쳤어요?”와 같은 댓글이 지배적이다.

격리해야 할 악마를 향한 분노다. 반면, 피해자가 성인일 경우 사건을 드러내는 시점부터 피해자를 의심하는 눈초리가 매섭다. 정말로 피해가 있었음에도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은 경우에도 ‘어쩐지 피해자 같지 않았다’는 평가와 함께 비난이 쏟아진다.법이 나를 피해자로 인정해주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피해자의 일상에 예견되는 파장들을 포함한다.

그리하여 신고를 망설이는 거대한 걸림돌로 작동하는 것이다. 통념이 지배하는 우리의 일상은 ‘미투’라는 새로운 파장을 만났다. 군부대 간담회에서 만난 군인들의 모습에서 통념을 깨려는 반가운 변화를 보았던 만큼 성폭력 수사 재판 과정도 새로운 관점으로 피해자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들이 평범한 군인으로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기를, 가해자에게도 변화가 있기를,
누구도 차별받거나 폭력을 당하지 않는 군대를 희망해 본다.
이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성폭력 문제는 해결될 것이고, 군대는 더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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