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외출하고 돌아왔는데 집 안이 난장판이다. 도둑이 들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해질 것이다.
만약 문제 된 사건이 도둑 정도가 아니라 성폭력이라면 어떨까?
사건이 중대한 만큼 그 처리 절차에 대한 부담감은 더욱 커지고, 절차 진행 과정에서 피해자가 온전히 보호받을 수 있을지도 걱정될 것이다. 소위 ‘2차 피해’에 대한 우려도 클 것이다.
성폭력은 신고율이 낮은 대표적인 범죄인데, 이처럼 피해자들이 신고하지 않고(실제로는 못 하고) 꾹꾹 참고 지내다가 폭로의 방식으로 터져 나온 것이 지금 문제 되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이다.
군은 그동안 성폭력에 대한 예방 및 피해자 지원 제도, 사건 처리절차 등을 꾸준히 개선해 왔다. 피해자는 법무·헌병·감찰·양성평등센터 등 여러 루트를 통해 사건을 신고할 수 있고, 의료·상담·법률 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아무리 많은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제도들이 유기적으로 기능하지 않으면 본래 의도했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단적으로 성폭력 사건에 대해 군 수사기관이 수사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양성평등계선에 공유되지 않아 피해자에게 적절한 상담이나 기타 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또 담당자 사이에 정보가 공유되지 않아 엇박자를 내거나, 피해자가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요구사항을 밝혀야 하는 어려움이 생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원스톱 서비스에 있다. 서 말이나 되는 구슬을 꿰어 피해자의 입장에서 종합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조율하는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군은 이미 구슬을 꿸 수 있는 고리를 마련해두고 있다. 바로 ‘성고충전문상담관’이다.
성고충전문상담관은 군인복무기본법에 근거해 마련된 제도로서 성폭력 등 성(性) 상담 관련 교육 이수 또는 상담경력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돼 있는데, 이들이 피해자의 상황과 요구를 파악해 필요한 지원제도를 적절히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한다면 이미 마련돼 있는 여러 제도의 실효성이 대폭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성고충전문상담관에 의한 원스톱 서비스가 이루어지면, 지휘관으로서도 부담이 경감된다. 아무리 교육을 받더라도 실제 사건 발생 시 세세한 사항에 대해 성폭력의 특성을 감안해 적절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성고충전문상담관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참고하면 문제가 될 상황을 쉽게 회피할 수 있고, 전문가의 조언을 따른 만큼 면책의 범위도 넓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고충전문상담관에 의한 원스톱 서비스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관련 규정들의 제정 또는 개정이 필요하나, 그에 앞서 무엇보다 성고충전문상담관 제도에 대한 군 구성원들의 이해와 신뢰, 존중이 필요하다.
성고충전문상담관이 문제를 더 키우고 시끄럽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사건을 가장 올바르고 적절하게 처리하도록 도움을 주는 전문가라는 인식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아무쪼록 성고충전문상담관 제도가 더욱 발전해 구슬을 보배로 만들고, 피해자가 2차 피해 걱정 없이 군의 제도를 통해 사건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